[ 이 한권의 책] 우주에 펼쳐진 춘추전국시대 이야기

김현태 기자 | 기사입력 2019/08/21 [23:25]

[ 이 한권의 책] 우주에 펼쳐진 춘추전국시대 이야기

김현태 기자 | 입력 : 2019/08/21 [23:25]

[뉴스와 사람= 김현태 기자] 지난주 중국 SF문학 연재에서 다 못다룬 중국 SF 문학

인간은 어디까지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가? 더욱이 만약 타인이 다름 아닌 외계 생명체라면? 거꾸로, 외계 문명은 인류를 신뢰할 수 있을까? 류츠신의 『삼체(三体)』 3부작은 상호 불신이 가득한 ‘암흑의 숲’ 곧 우주를 배경으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논한다. 중국 현대사에서 시작한 광기는 한 인간의 절망과 혐오로 그리고 혐오의 감정은 우주 문명 간에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우주를 공간 배경으로 삼는 점은 다르지만, 문명 간에 서로를 속고 속이는 양상은 꼭 춘추전국 시대 이야기를 닮았다. 또한 『삼체』는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계열과 달리 보다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독자를 자극한다.

『삼체』 1부는 크게 3가지 다른 시공간 배경을 축으로 전개되며 중국 역사의 특수성을 충격적인 서사로 이어낸다. 첫 번째 축은 현재 시점이다. 신소재 나노 연구자인 왕먀오는 이론물리학자들의 잇따른 죽음 소식을 접하고 이들의 죽음에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품는다. 이후 왕먀오는 중국 공안 출신 스창의 도움으로 이들의 죽음이 각국 군대의 합동 대응 작전과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곧 인민해방군의 안내를 받아 비밀스러운 게임 ‘삼체’와 관련된 모임에 잠입한다.

두 번째 축은 바로 게임 ‘삼체’ 속 이야기다. 게임 ‘삼체’의 핵심 요소는 세 개의 태양이다. 태양들 간 상호작용으로 인해 삼체 행성의 공전 궤도는 불규칙적이다. 이는 물리학의 삼체문제*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인데, 삼체 문명의 목적은 태양‘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예측해 기후 현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난세기와 온난한 기온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항세기가 언제 도래할지 정확히 추측하는 것이다. 난세기와 항세기를 추측하지 못하면 문명은 곧장 파괴되고 새로운 문명으로 턴을 넘겨야 한다. 이 가운데 게임 속에는 주왕부터 교황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역사적 이미지가 등장해 독자를 즐겁게 한다.

세 번째 축은 노후한 물리학자 예원제가 왕먀오에게 과거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 그는 물리학자 아버지를 잃은 것도 모자라 오지로 하방(下方)된다. 이때 홍위병들이 예원제의 아버지를 인민재판하는 장면은 류츠신의 명료하다 못해 냉정하다 싶은 필체로 묘사돼 독자에게 되레 긴장감을 자아낸다. 한편 오지에서 일하던 예원제는 곧 외계인 탐사 프로젝트인 ‘홍안’에 차출되고, 물리학자로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던 그는 우연히 비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외계 문명과 연락을 주고받게 된 것이다. 문혁으로 인류에 대한 신뢰를 잃은 예원제는 뜻밖의 회신을 보낸다. ‘이곳에 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이 세계를 얻는 것을 돕겠습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지구를 외계 문명에 팔아넘긴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중국 SF 다수를 번역한 바 있는 이소정 번역가도 “‘문혁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없는 시기였다’라는 중국 지인의 말을 떠올리고 나서야 그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2부에선 삼체 문명의 침공이 임박하고 이에 대응하는 인류의 다양한 모습이 등장한다. 삼체의 함대는 지구를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고, 인류 문명은 삼체에서 보낸 지자(智者)*의 방해로 더는 기초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결국 유엔은 인간의 마음만은 읽지 못하는 삼체 문명의 약점을 파악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지구방어책을 계획하는 4명의 면벽자(面壁者)를 선정한다. 이들은 삼체 문명은 물론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에게도 자신의 의도를 들켜선 안 된다. 삼체 문명은 이에 대응해 파벽자(破壁者)를 동원해 면벽자들이 높게 세운 ‘마음의 벽’을 깨트리고자 한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인류를 지키려는 면벽자들의 모습은 천하를 놓고 합종연횡을 논했던 춘추전국시대 소진과 장의를 닮았다.

2부에선 영문도 모른 채 면벽자로 지정된 천문학 전공 출신의 사회학자 뤄지가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그래서인지 역사의 향기를 짙게 풍기는 1부와 달리 2부는 넓은 우주 속에서 인류의 존재를 고찰하는 사회학적 작품에 가깝다. 뤄지가 제시하는 ‘우주사회학’ 이론은 우주 내 문명 간 공존과 파괴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지만, 범위를 좁혀 나와 다른 타자(他者)와의 관계로도 소급될 수 있다. 요컨대 인류를 우리 자신으로, 삼체 문명을 일상 속 수많은 타자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독자는 자연스레 타자를 불신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소설 속 상황에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다.

우주사회학의 공리는 단순하다. 첫째, 생존은 문명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둘째, 문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나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주요한 개념이 추가된다. 인류가 300년 만에 폭발적인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했듯이 모든 우주 문명은 짧은 기간 내에 폭발적인 기술 발전 과정을 겪게 된다. 소설이 설명하는 ‘기술 폭발’의 개념이다. 이후 문명은 발전된 기술로 다른 문명의 존재를 인지한다. 그렇다면 두 문명은 상호 공존할 수 있을까? 소설이 꺼내 놓은 답은 부정적이다. 설령 양쪽 모두 선의를 가졌다 해도 서로의 진심을 알 수 없는 우주에서 공존보다는 전쟁을 선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것이 끊을 수 없는 생존의 딜레마, 곧 ‘의심의 사슬’ 개념이다. 결국 합리적인 문명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가능한 한 숨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문명은 우주의 암흑 속에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사냥감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과도 같다.

▲ 삼체 1 · 2 류츠신 이현아(1권),허유영(2권) 옮김 448쪽, 708쪽 15,700원, 16,800원 단숨  © 뉴스와 사람


이렇듯 소설이 마지막 부분까지 몰두하는 주제는 문명의 어두운 본질이다. 외계 문명에 대한 소설의 부정적 시선은 마치 생전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발달한 문명을 접하는 것은 미국 원주민이 콜럼버스를 만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3부의 암울하기 그지없는 결말 속에서도 류츠신은 중간중간 희망의 끈을 남겨놓는다. ‘사랑의 싹은 우주의 다른 곳에도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싹이 자라 무성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평화주의자 삼체인의 말엔 미래의 현실만큼은 소설의 결론과 다르길 바라는 일말의 희망이 담겨있다.

*삼체문제: 세 개의 물체 간의 상호작용과 움직임을 다루는 고전역학 문제.

*지자(智者): 양자얽힘 현상을 이론적 근거로 소설 속에 창작된 입자. 짝을 이룬 두 입자의 위치를 알고 있으면 한 입자의 정보를 다른 입자를 통해 곧바로 알 수 있다. 소설에서 삼체인은 입자 하나를 지구에 보내고 나머지 입자 정보를 조작해 지구에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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