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를 ‘악플금지법’에 담지 말라

온전히 본인의 모습으로 살고자 투쟁했던 한 사람

뉴스와 사람 | 기사입력 2019/10/31 [19:45]

설리를 ‘악플금지법’에 담지 말라

온전히 본인의 모습으로 살고자 투쟁했던 한 사람

뉴스와 사람 | 입력 : 2019/10/31 [19:45]

 아이돌 그룹 ‘f(x)’ 출신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가 사망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유명세를 치러야 했던 설리. 그에게 악플이 과하게 달리기 시작한 때는 본인이 원치 않는 방법으로 열애 사실이 공개되면서부터였다. 그것은 그룹에서 하차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 후, 설리는 개인 SNS를 통해 팬들과 자주 소통했다. ‘자유분방’한 20대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의 행보는 ‘기행’으로만 소비됐다. 남자친구와 데이트 하는 사진을 올리면 ‘순결’이라는 잣대로 온갖 성 관련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에 ‘노브라’, ‘관종’, ‘마약’은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됐다.

 

설리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쓰인 ‘여자 아이돌’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 역시 그때부터였다. 아무래도 그룹 활동을 할 때는 본인의 행동이 다른 멤버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했던 측면이 컸을 것이다. 결국, 설리는 혼자가 된 후 ‘본인’을 찾아갈 수 있었단 얘기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한 설리는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있었다. ‘노브라’ 논란에 대해 설리는 “속옷 착용은 개인의 자유”라며 “브래지어 와이어는 소화기관 등 건강에 좋지 않다. 착용하지 않은 게 자연스럽고 예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노브라 논란이 됐을 때) 무서워하고 숨어 버릴 수도 있었다”며 “그런데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많은 사람이 (노브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날 ‘마약’에 대해 해명을 하기도 했는데 설리는 “나는 범법행위는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똑 부러지는 답변이지 않은가. 개인의 자유와 범법 행위에 대해 정확히 구분해 행동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설리는 범법 행위를 저지른 다른 연예인들보다도 대중의 싸늘한 시선과 악플에 시달렸다.

 

설리는 편견과 싸우는 것을 넘어서 어느덧 ‘연대’를 이야기할 만큼 성장해있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과 3·8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는 글들을 SNS에 게재하며 팬들과 소통을 이어갔다. ‘Girls Supporting Girls’ 문구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싸움은 그렇게 조금씩 확장돼 갔다. 설리의 사인회를 찾은 한 팬이 “언니, 나 노브라에요. 노브라”라고 말해준 사연은 끔찍하게도 악플에 시달렸던 설리의 선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런 설리가 사망했다. 한국 사회는 그의 죽음의 원인을 ‘악플’에서 찾고 있다. 국회는 악플을 금지하는 ‘설리법’을 발의한다고 시끄럽다. 그런데, 그 방향이 고약하다. 인터넷실명제라니….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이미 〈정보통신망법〉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만장일치로 ‘위헌’을 결정한 바 있다. 인터넷실명제가 악플에 대한 해결책이 될 것인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악플 등 명예훼손성 댓글을 쓰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 포털에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다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요구하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성댓글을 쓴 네티즌에 대한 법적 대응이 실제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설리의 사망 원인을 ‘악플’로만 국한하는 것에도 의문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다. 설리 팬들은 일반 네티즌의 악플보다 ‘기레기’에 더 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설리가 팬들과 소통하려고 올린 SNS 사진들을 퍼가며 “또 노브라”, “관종”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해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게 매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매체들이 설리 사망 후 “악플이 문제”라고 쓴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다.

 

어떤가. 언론, 그들은 반성하지 않으며 달라지지도 않았다. 설리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을 찍어 사진 기사로 내보낸 것이 언론매체였다. 유가족들의 요청에 의해 비공개된 빈소를 공개한 것도 기자였다. 한국기자협회의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따르지 않고 기사 제목에 ‘자살’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설리의 사망 방법마저도 제목과 기사에 그대로 실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설리의 사망마저도 조회 수 장사로 이용하고 있는 게 과연 누구인가.

 

▲ [출처: JTBC2 <악플의 밤> 화면 캡처] 

 

이뿐인가. 설리의 사망에 대해 구체적 내용이 마구잡이로 공개된 데에는 소방당국의 책임도 컸다. 119구급대의 활동 동향 보고서가 직원에 의해 외부로 유출됐다고 했다. 사망한 설리의 현장 상황이 자세히 기록된 문서였다. 유독 설리의 사망 과정이 드러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설리는 생전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때’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던 설리. 여러 검사를 진행했음에도 통증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설리에게 의사는 ‘산부인과 질환일 수 있다’며 진료를 권유했고 이를 받아들였다가 ‘임신’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병원 직원이 설리의 의료기록 차트를 찍어 유출하면서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보호받지 못했던 설리다. 그것도 당연히 보호해야 할 누군가들에게서 말이다.

 

팬들은 네이버 등 포털에 올라온 수많은 설리 관련 연관검색어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설리’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단어들이 따라붙은 게 사실이다. 그것을 팬들이 ‘연관검색어 바꾸기’ 운동으로 “설리 사랑해” 등 현재의 내용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에 이어 ‘연관 검색어’ 정책에 대해 사회적으로 재고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설리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SM은 샤이니 멤버 종현을 잃었던 같은 소속사다.

 

1세대 아이돌 신화의 멤버 김동완의 일침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비수로 꽂힌다. “어린 친구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편히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보여주길 바라는 어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섹시하되 섹스하지 않아야 하고, 터프하되 누구와도 싸우지 않아야 하는 존재가 되길 원하고 있죠. 많은 후배가 돈과 이름이 주는 달콤함을 위해 얼마만큼의 마음의 병을 갖고 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 대형 기획사들의 안일한 대처는 접속 없이도 퍼지게 될 전염병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설리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본인에 대해 “그냥 이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의 죽음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을 것 같은 설리. 자유분방했던 그를 악플방지를 담는 ‘설리법’ 등 어느 하나로 정의하고 싶진 않다. 그냥 ‘온전히 본인의 모습으로 살고자 치열하게 투쟁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하고자 한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그를 오롯이 기록하는 방법이 아닐까.

 

“故 최진리 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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