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위대한 지도자, 라몬 막사이사이

이기선 기자 | 기사입력 2020/02/19 [23:56]

필리핀의 위대한 지도자, 라몬 막사이사이

이기선 기자 | 입력 : 2020/02/19 [23:56]

 필리핀의 위대한 지도자 라몬 막사이사이 (RAMON MAGSAYSAY : 1907 - 1957)

정치적으로는 부패했고 경제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해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필리핀이지만 역사를 들춰보면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읽었던 전기문 중에 이름도 특이한 막사이사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가 바로 필리핀의 대통령이었다.


놀랍게도 1970년대 교과서에도 나온 인물이다. 진짜다. 그랬다는 얘기다. 


아무튼 -
라몬 막사이사이는 필리핀 국민의 우상이며 영웅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대부분 필리핀의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뛰어난 개인적 능력을 가졌거나 혹은 가졌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는 그저 보통사람이라고 불릴 만큼 평범했다.


잠발레스에서 태어나 UP(University of Philippines)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막사이사이는 이후 호세 리잘대학으로 학교를 옮겨 상업학을 전공했다. 트라이트란사라는 운송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하다 이후 회사의 매니저로 승진한다. 회사가 파산위기를 맞게 되었을 때 그는 위기를 잘 수습해 회사를 구해내며 자신의 진가를 알리기 시작했다.


재미없어도 읽어두면 조금이나마 도움 될지도 모르니 그냥 재밌다고 생각하자!

 

일본이 필리핀을 침략했을 때 자진해서 군에 입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그의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록 일본군에게 패했지만 ‘막사아사이 게릴라부대’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많은 공헌을 세웠고 전쟁 이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 당시 전국은 공산 게릴라 단체인 후크단으로 시끄러웠다. 대통령이 그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자 막사이사이는 후크단을 토벌하고 이어 부조리로 가득한 군을 정화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여기서 일단 따봉 한번 보내자!


1953년 대통령에 당선된 막사이사이는 정직하고 청렴한 대통령으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대통령 취임식 날 의전용 자동차를 마다하고 중고차를 타고 식장에 도착했으며, 반대파에서 무식하다고 비판할 때도 ‘나는 책으로 정치하지 않고 인격으로 정치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막사이사이는 대통령 궁인 말라카냥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했다. 서민들은 말라카냥궁을 찾아가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었다. 그는 임기 중 그의 가족 및 측근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고 도로, 다리, 및 건물 등이 자신의 이름을 따라 호명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막사이사이는 필리핀에 민주화를 토착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세우고 공산주의 단체를 섬멸하는 등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된다. 정책 또한 서민과 빈곤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바랑가이(우리나라의 ‘동’에 해당)의 환경을 개선하고 빈민가 및 낙후한 지방에 공동 우물을 설치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이용하게 했다. 지금도 그 우물을 “막사이사이 우물”이라 부른다. 빈민들은 그를 “진정한 사나이”라 부를 정도였다. 막사이사이는 많은 업적을 남기지만 재임 4년차 때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이후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품격과 공적을 기념하게 위해 막사이사이상Magsaysay Award라는 국제적인 상이 마련되었다. 아시아의 노벨상으로도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은 청렴하고 희생적인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평소 소신 때문이었는지 현재 필리핀에는 막사이사이의 이름을 딴 지명은 없다. 니노이 아키노(대통령은 아니지만) 공항, 로하스 볼리바드, 케손 시티, 마카파칼 공항 등 많은 지명이 대통령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지만 아직 막사이사이의 이름을 딴 지명은 없다.
필리핀 국민들은 이런 지도자를 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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