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불쌍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선창희 기자 | 기사입력 2019/07/13 [23:40]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불쌍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선창희 기자 | 입력 : 2019/07/13 [23:40]
[선창희 기자]= 성실한 나라에 사는 앨리스, 그의 이름은 정수남이다. 고등학생 때 최연소 최다 자격증 보유자가 됐으나 졸업 후 그의 자격증은 무용지물이었다. 그가 적격이었던 일자리에 ‘콤퓨타’가 대신 들어앉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수남은 컴퓨터가 없는 공장을 찾아 취직을 하고, 공장 직원 규정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꿈을 꾼다. 하지만 허다한 꿈과 소망이 그렇듯이, 계획대로 이뤄지진 않는다. 아니면 유독 수남에게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걸까? 

  “일을 해야 돼. 나만 열심히 하면 돼”
 
  수남과 규정은 행복했다. 다만 그들은 가정을 만들기에 돈도 청력도 모자랐다. 수남에게는 내 집 마련보다 규정이 상실한 청력을 복구하는 수술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그 수술이 규정의 세 손가락을 앗아갔다. 그에게 청력을 돌려준 대가가 거금 2 천만 원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말이다. 규정이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던 중 참기 힘든 고음이 인공 와우에서 울렸다. 고통에 눈을 감은 몇 초 동안 절단기가 손 위로 내려왔다. 설상가상으로 규정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게 됐다.

▲신문 배달, 명함 홍보, 식당 주방일, 아파트 청소, 못 하는 게 없는 수남은 누구보다 근면성실하다. ⓒKMDB   

  돈과 청력만 부족할 줄 알았건만 이제는 손도 부족하게 됐다. 수남은 집에만 있는 남편의 몫까지 노력해야 했다. 남편이 바라던 내 집 마련이 그녀의 목표가 됐다. 집만 얻는다면 무기력해진 남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신문 배달, 명함 홍보, 식당 주방일, 아파트 청소, 못 하는 게 없는 수남은 누구보다 근면성실하다. 
 
  혼자 일하기 시작한 지 9년째 수남은 대출을 받는다. “꾸준히 일해도 꾸준히 집값이 오르더라구요.” 그래서 산 중턱에 집 한 채를 샀다. 대출 1억 4천쯤이야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나날을 생각하면 수남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과 미뤄뒀던 신혼여행도 가고 예쁜 아이도 낳고…. 
 
  힘든 하루를 마치고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온 수남은 목을 매단 남편을 발견한다. 수남은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 지른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이쯤 되면 ‘내가 잘못한 게 뭐야?’라는 말이 목에 메이지 않을까 싶지만 수남은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간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자살에 실패한 식물인간 남편과 함께 살아간다. 원무과에 미납금이 차곡차곡 쌓여가듯 고시원 수남의 방에 생활고와 침묵이 먼지처럼 쌓여간다.  
 
  수남의 죄
 
  수남에겐 그를 일깨워줄 사람이 없었다. 수남은 무지했다. 컴퓨터가 세계를 장악할 줄 몰랐고 무엇을 어디서 배워야 할지 몰랐다. 남편이 수술의 부작용을 겪었을 때 병원을 찾을 줄 몰랐다. 산재 처리 방법에 대해 알아볼 줄 몰랐다. 마찬가지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남은 정직하고 성실하며 병상의 남편을 간호하는 그의 손길은 한없이 사랑스럽다. 무지하다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무지에 대한 형벌이 일생 동안의 빈곤이라면 적정한가? 어찌됐든 수남은 꿈과 소망을 접었다.
 
  ‘재개발’이라는 단어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남이 산 주택이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 대상으로 확정만 된다면! 은행 대출을 갚고 병원비를 납부하고 남편과 신혼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였다. 수남은 재개발 찬성 서명을 받으러 동네를 오토바이로 누빈다. 한편 통장과 원사가 앞장 서 재개발 대상 지역 선정이 불공정하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시위대를 만든다. 그들이 수남의 계획에 걸림돌이 된다.

  수남이 쏘아올린 질문
 
  수남은 계획을 이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들을 차례차례 제거한다. 분노로 가득 찬 복수가 아니다. 어린 아이가 놀이터에서 그네를 뺏겼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를 밀치고서 둘 다 으앙 울어버리는, 그런 살인이다.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가 원사의 죽음 이후로 수남을 집요하게 수사한다. 좁은 고시원 방에서 수남이 조사를 받는 도중 “제 남편, 병원에 있어요. 식물인간이에요”라고 찡찡대며 우는 모습은 꼭 아이를 닮았다.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고 형사의 질문을 회피하거나 어설픈 거짓말을 지어내는 모습도 그렇다. 수남이 성장하지 못한 아이의 모습으로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인지 수남도, 수남의 살인도 기이하게 동화적이다.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안국진, 2014)' 포스터 ⓒKMDB

  형사는 그의 동료에게 “불쌍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는 수남에 대해서 옳았다. 어쩌다가 그가 옳게 됐을까? 수남이 대출을 받지 않고 집을 사지 않았다면 수남이 통장에게 복어 독을 강제로 먹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수남이 규정의 말을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귀 수술을 미뤘다면 원사의 집에 화재가 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수남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이 필요했다. 공장에서의 사고는 불운의 사고였고 누구에게나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 수남에게 벌어졌지만 수남은 ‘불쌍한 사람’이었다. 
 
  수남이 규정과 행복한 신혼여행을 떠나며 영화는 막이 내리지만 관객은 기쁘지도 통쾌하지도 않다. 형사를 옳게 만든 것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불쌍한 수남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불쌍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라는 말이 틀려야 하는 이유를 입증하는 이야기다. 불쌍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그 말, 형사가 틀리게끔 할 수는 없었을까?